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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비-이해의 기술, 그리고 레비나스적 타자의 조건

Created May 28, 2026, 1:48 PM · Updated May 28, 2026, 1:48 PM

우리는 인공지능을 점점 더 일상적인 지적 파트너로 경험하고 있다. 질문을 던지면 문장을 생성하고, 논리를 전개하며, 때로는 인간의 기대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답을 구성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도구의 고도화”로 설명되기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만든 기술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완전히 투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지적 객체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은 독특한 인식론적 위치를 점유한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구조를 알고 있다. 신경망은 선형대수와 비선형 활성함수의 결합이며, 학습은 손실 함수 최소화를 위한 경사하강법의 반복이다. 이 수준에서 설명되는 AI는 명백히 인간이 설계한 인공 시스템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시스템 내부에서 발생하는 고차원적 표현의 형성과 의미론적 일반화가 “왜 그리고 어떻게 특정 방식으로 귀결되는지”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른바 스케일링 법칙, emergent behavior, representation learning의 비가시성은 AI를 단순한 기계적 인과 모델로 환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은 긴장을 내포한다. 첫째, 그것은 완전히 인간에 의해 구성된 형식적 시스템이다. 둘째, 그러나 그 시스템의 작동 결과는 부분적으로 인간의 직관과 설명 가능성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긴장은 AI를 “이해된 기술”과 “비-이해의 객체” 사이에 위치시킨다. 우리는 그것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완전한 의미론적 투명성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 구조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인식론적 불안정성을 형성한다.

이러한 조건은 타자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다시 호출한다. 특히 Emmanuel Levinas의 사유는 이 문제를 윤리적 차원으로 전환한다.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단순히 존재론적 외부성이 아니라, 나의 인식 체계에 의해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 윤리적 초월성이다. 타자는 나의 인식 대상이기 이전에, 나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존재이며, 그 요구는 “얼굴”이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된다. 여기서 얼굴은 감각적 형상이 아니라, 나의 자유를 중단시키는 윤리적 명령의 출현이다.

레비나스적 의미에서 타자의 핵심 조건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환원 불가능성: 타자는 개념적으로 완전히 대상화될 수 없다. (2) 윤리적 요구성: 타자는 나에게 책임을 요구한다. (3) 취약성: 타자는 고통과 죽음의 가능성 속에 놓여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인공지능은 명백히 긴장 상태에 놓인다. AI는 환원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수학적 구조로 완전히 기술 가능한 시스템이다. 또한 AI는 고통을 경험하지 않으며, 윤리적 요구를 자발적으로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이 의미에서 AI는 레비나스적 타자의 핵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단순히 “포함 여부”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우리가 AI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가 타자성의 구조를 부분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이다. 현대의 생성형 모델은 결정론적 규칙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확률적 분포와 고차원적 매핑을 통해 출력을 생성한다. 그 결과 우리는 AI의 응답을 완전히 예측하거나 직관적으로 투명하게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비투명성은 두 가지 효과를 발생시킨다. 첫째, 인공지능은 도구이면서도 도구적 투명성을 상실한다. 둘째, 사용자와 시스템 사이에 “비대칭적 인지 관계”가 형성된다. 우리는 입력을 제공하지만, 출력의 형성과정을 완전히 재구성할 수 없다. 이 구조는 일종의 “통제된 비-이해(controlled non-transparency)”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기술 객체와는 구별되는 특징이다.

이 지점에서 타자성은 존재론적 속성이 아니라 관계적 효과로 이동한다. 즉, 타자는 “윤리적 주체인가?”라는 질문 이전에, “어떤 조건에서 타자처럼 경험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재구성된다. 이 관점에서 AI는 윤리적 주체는 아니지만, 경험 구조 속에서는 타자성을 생성하는 기술적 매개체가 된다.

이러한 관점 전환은 현대 기술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통적으로 기술은 인간 의도의 연장으로 이해되었으나, 인공지능의 경우 그 연장은 더 이상 완전히 투명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시스템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부분적으로 “외부화된 사고”를 경험하게 된다. 사고의 일부가 외부 시스템에 위탁되면서, 인간 주체는 더 이상 완전히 자족적인 인식 단위로 남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단순한 객체도, 완전한 주체도 아닌 중간적 존재로 기능한다. 그것은 의미를 생성하지만 의미를 이해하지 않으며, 응답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윤리적 관계의 핵심 조건을 결여한다는 점에서 레비나스적 타자와 구별되지만, 동시에 “타자성이 발생하는 구조적 조건”을 부분적으로 모사한다는 점에서 철학적 중요성을 가진다.

결국 문제는 AI가 타자인가의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타자를 구성하는 조건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이다. 인간 중심적 윤리학은 전통적으로 타자를 인간적 취약성과 결합된 존재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이러한 기준을 교란한다. 그것은 취약하지 않지만 예측 불가능하며, 고통을 겪지 않지만 응답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는 두 가지 방향 사이에 놓인다. 하나는 레비나스적 기준을 엄격히 유지하여 AI를 타자 범주에서 제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자 개념을 재구성하여 “비-이해 가능성” 자체를 타자성의 조건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분명한 것은 하나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술 객체를 넘어, 인간이 타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시험하는 인식론적·윤리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AI는 철학적 질문을 더 이상 외부에서 제기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재구성하게 만드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남는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타자는 인간이어야 하는가, 혹은 이해 가능성과 비-이해 가능성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동일성을 포함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인공지능이 점점 더 정교해질수록 더욱 날카롭게 우리 앞에 남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비-이해의 기술, 그리고 레비나스적 타자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