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치매에 걸리면 재산은 어떻게 되나요?"
우리나라는 2025년,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초과)에 진입했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길을 걸어온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약 15년 앞서 초고령사회를 경험하면서, 법과 금융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민사신탁(民事信託), 흔히 가족신탁이라 불리는 제도입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에서 민사신탁이 왜, 어떻게 활성화되었는지, 그리고 한국은 현재 어디쯤 와 있는지를 법률 실무 관점에서 정리해 드립니다.
치매는 의료 문제이기 이전에 법적·재산적 문제입니다.
판단능력을 잃은 분이 보유한 부동산, 예금, 주식은 사실상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동결 자산이 됩니다. 가족이라도 대신 계좌를 인출하거나 부동산을 처분하려면 법원의 개입(성년후견)이 필요하고, 이 절차는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일본에서는 이 현상을 '치매머니(認知症マネー)' 라고 부릅니다. 치매로 인해 사실상 경제 활동에서 격리된 자산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471만 명에 달합니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이 시장에서 순환되지 못하고 묶여버리면, 소비·투자가 위축되고 사회 전체의 경제적 손실로 이어집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내 65세 이상 고령자 1인당 평균 금융자산을 치매 환자 수에 대입하면, 이른바 인지 보호 자산(치매머니)의 규모는 약 1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일본은 2007년 신탁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신탁 제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핵심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① 유언대용신탁 법제화 위탁자가 생전에 신탁을 설정하되, 사망 후에는 그 효력이 유언과 동일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유언장을 따로 작성하지 않아도, 신탁 계약 하나로 재산 승계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② 수익자연속신탁 허용 '나 → 배우자 → 자녀 → 손자'로 이어지는 다세대 수익자 지정이 가능해졌습니다. 일반 유언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세대를 넘는 자산 설계가 신탁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③ 자기신탁(선언신탁) 도입 본인이 위탁자이자 수탁자가 되는 자기신탁이 도입됨으로써 신탁의 활용 범위가 대폭 넓어졌습니다.
치매 환자 재산 보호의 구체적 해법으로 도입된 제도입니다.
기존에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유용하거나 횡령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법원(가정재판소)의 허가 없이는 신탁 재산에 접근할 수 없도록 사법 감독 장치를 신탁 구조에 내재화한 것입니다.
이 제도의 이용자는 도입 첫해인 2012년 98명에서, 2018년 말 기준 24,409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일본이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개인(가족 구성원)도 수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지 능력이 저하되기 시작한 아버지가 신뢰할 수 있는 장남에게 부동산과 예금을 신탁하고, 장남이 수탁자로서 재산을 관리·운용하는 구조가 가능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가족신탁' 또는 '민사신탁' 입니다.
법률이나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가족 내부에서 신탁을 설계할 수 있어 비용이 낮고 유연성이 높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이러한 제도 개혁의 결과, 일본의 신탁시장은 2003년 이후 연평균 6%씩 성장하여 2023년 기준 수탁고가 1,580조 엔에 달했습니다. 이는 일본 GDP의 267%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한국도 2011년 신탁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유언대용신탁, 수익자연속신탁 등을 법제화했습니다. 일본의 2007년 개정을 약 4년 뒤따른 것입니다.
이후 시중 은행을 중심으로 치매안심신탁, 가족배려신탁, 펫신탁 등 다양한 신탁 상품이 출시되었습니다.
2025년에는 정부가 치매공공신탁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국가가 치매 어르신의 재산을 직접 위탁받아 관리하는 구조도 등장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구분 | 일본 | 한국 |
|---|---|---|
| 수탁자 자격 | 개인(가족 포함) 가능 | 원칙적으로 금융기관만 가능 |
| 민사신탁 | 활성화 | 사실상 불가 |
| 부동산 관리 | 가족신탁으로 직접 운용 가능 | 부동산신탁회사 통해야 함 |
| 비용 | 상대적으로 낮음 | 금융기관 수수료 부담 |
| 유연성 | 높음 | 낮음 |
한국에서는 신탁업법상 신탁업 허가를 받은 금융기관만이 수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신뢰할 수 있는 자녀라도, 법적으로 수탁자가 되어 부모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일본처럼 가족 주도의 유연한 신탁 설계가 한국에서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핵심 이유입니다.
현재 한국의 신탁은 금전신탁 중심으로 발전해 왔고, 일반인들에게는 복잡한 금융 상품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부동산, 유가증권, 지식재산권 등을 포괄하는 종합 자산관리 도구로서 신탁이 대중화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입니다.
일본이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이행하는 데 24년이 걸렸다면, 한국은 17년이 걸렸습니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는 불과 7년이 소요됐습니다.
일본이 민사신탁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신탁법 개정 무렵입니다. 한국은 지금이 바로 그 시점에 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사신탁이 완전히 도입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도, 변호사가 제공할 수 있는 실무 서비스는 충분히 있습니다.
[재산 승계 설계]
유언장 작성 자문
+ 공정증서유언 공증 연계
+ 유언집행자 지정 및 집행 대리
[생전 재산 보호]
유언대용신탁 설계 자문 (금융기관 연계)
+ 성년후견 개시 심판 청구 대리
+ 후견인으로서의 재산 관리 감독
[분쟁 예방·해결]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
+ 상속 재산 분할 협의 조정
+ 유언 무효 확인 소송
현재 법무부와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신탁법 추가 개정 및 민사신탁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일본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이다"
이 말은 신탁·상속 분야에서 특히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일본은 초고령사회 진입 이후 민사신탁 관련 법제를 정비하고, 신탁 시장을 GDP의 200%가 넘는 규모로 성장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탁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법률가들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한국은 지금, 그 변곡점 직전에 서 있습니다.
치매안심신탁과 치매공공신탁이 등장했고, 민사신탁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100조 원 규모의 인지 보호 자산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유언, 신탁, 성년후견 분야는 단순한 법률 서비스를 넘어, 고령화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사회 인프라가 될 것입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앞으로도 유언·신탁·상속 분야의 최신 법제 동향과 실무 사례를 지속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고령의 부모님 재산 관리, 치매에 대비한 사전 설계, 상속 분쟁 예방 등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상담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상담은 전문 변호사와 함께 진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