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는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보호하는 범죄이지만, 한편으로는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형법 제310조는 이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명예훼손죄의 위법성을 조각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최근 대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사유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분석합니다.
형법 제307조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제1항)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제2항)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제1항의 경우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명예라는 법익이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표현의 자유, 특히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형법 제310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로서 그것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위법성을 조각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310조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대법원 2023년 판결은 형법 제310조의 '진실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했습니다.
사안의 개요
피고인은 대학 총학생회장으로, 학생회 임원진의 음주운전 사실을 계기로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총학생회장으로서 음주운전을 끝까지 막지 못하여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였습니다. 이 글에서 특정 학생(乙)이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언급되었고, 乙은 명예훼손으로 피고인을 고소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적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세부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게시글의 중요한 부분은 **'乙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였고 피고인도 이를 끝까지 제지하지 않았으며, 피고인 역시 음주운전 차량에 동승하였다'**는 점이었고, 이는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였습니다. 따라서 일부 세부 사항에서 차이가 있더라도 '진실한 사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실무적 의미
명예훼손 사안에서 '진실 여부'는 전체 내용의 핵심적인 취지를 기준으로 판단되며, 세부적인 표현의 과장이나 일부 사실관계의 오류만으로는 진실성이 부정되지 않습니다.
형법 제310조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①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②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합니다.
대법원 2020. 8. 13. 선고 2019도13404 판결은 객관적 공공성을 다음 요소를 고려하여 판단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다만, 공공의 이익 외에 부수적으로 사익적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주요한 목적이 공익이라면 형법 제310조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 31. 선고 2023노868 판결은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피고인이 거래업체에게 경쟁업체 대표의 리베이트 수수 사실을 알렸고, 이로 인해 자신의 거래처를 유지하려는 의도도 있었으나, 법원은 "거래처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목적이나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 위법성을 조각시켰습니다.
'공공의 이익'에는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됩니다.
대법원 2023년 판결에서 대학 총학생회 내 음주운전 문제는 비록 대학이라는 한정된 집단 내의 문제이지만,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공공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되었습니다.
형법 제310조는 형법 제307조 제1항(사실 적시 명예훼손)에만 적용됩니다. 형법 제307조 제2항의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는 형법 제310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대법원 1993. 4. 13. 선고 92도234 판결).
허위사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① 적시한 사실이 허위이고, ② 행위자가 그 사실이 허위라고 인식하였어야 합니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허위인 사실이더라도 행위자가 진실이라고 믿었다면 제307조 제2항이 아닌 제1항이 적용되고, 이 경우 형법 제310조에 의한 위법성 조각 가능성이 열립니다.
형법 제310조는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판례는 이를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주된 동기나 목적이 공익이라면, 부수적인 사익적 동기가 섞여 있더라도 무방합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표현 방법이 지나치게 모욕적이거나 인신공격적인 경우에는 상당성을 잃어 위법성 조각이 부정될 수 있습니다. 사실 적시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과도한 비방이 가해진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여부는 사안의 핵심입니다. 진실성 입증, 공공성 소명, 표현 방법의 상당성 등 복잡한 법리와 사실관계가 얽혀 있어 전문가의 조력이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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