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유언으로 특정 재산을 남겨주셨는데, 유언집행자인 다른 상속인이 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발생한 지연이자는 언제부터 청구할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부터 당연히 이자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법원 2025. 7. 16. 선고 2024다293313 판결은 이와 다른 중요한 법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유언집행자가 유증 이행을 미루고 있더라도, 수증자가 명시적으로 이행을 청구한 시점부터만 지체책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망인은 2018. 2. 27. 사망하면서 아들(원고)에게 거액의 금전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특정유증을 남겼고, 딸(피고)을 유언집행자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이 격화되면서 유증의 이행은 수년간 지체되었습니다. 원고는 유증 원금과 함께 망인의 사망일 다음 날인 2018. 2. 28.부터 연 5%의 지연손해금을 함께 청구하였습니다.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원고가 청구취지를 변경하여 명시적으로 이행을 최고한 2021년까지 약 3년여의 기간에 해당하는 지연손해금 액수는 상당히 컸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유언집행자의 특정유증 이행의무는 피상속인 사망 시부터 이행기가 도래하는가, 아니면 수증자의 이행청구가 있어야 비로소 지체책임이 발생하는가?
대법원은 먼저 특정유증의 법적 구조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특정유증이란 유언자가 상속재산 중 특정한 재산(예: A 부동산, B 예금)을 지정하여 특정인에게 유증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유증 목적인 재산은 일단 상속인에게 귀속되고, 수증자는 유증의무자(유언집행자 또는 상속인)에 대한 채권을 취득할 뿐입니다. 즉 특정유증을 받은 자는 상속인의 지위가 없고, 단지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채권자입니다.
민법 제1099조는 유언집행자가 취임을 승낙한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임무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원고는 이 조항을 근거로 사망일부터 지체책임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체 없이 임무를 이행하여야 한다'는 문구의 의미는 다음에 한정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이 조항은 유언집행자가 취임 후 신속하게 집행 절차를 개시하라는 절차적 의무를 강조한 것일 뿐, 사망 시점이나 취임 시점에 곧바로 유증 목적물의 인도 의무 이행기가 도래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정에 의한 유언집행자가 특정유증을 받은 자에게 유증을 이행할 의무는, 유언자가 유언으로 달리 정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행기한의 정함이 없는 채무이다. 따라서 유언집행자는 그 의무에 대한 이행청구를 받은 때에 비로소 지체책임을 진다.
민법 원칙상 기한의 정함이 없는 채무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이행을 청구(최고)한 때부터 지체책임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명시적으로 이행을 청구한 시점은 2021년이었으므로, 2018년 사망일부터의 약 3년간 지연손해금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실무적 시사점은 다음 한 가지입니다.
특정유증을 받았다면 무작정 유언집행자의 이행을 기다리지 말고, 즉시 내용증명을 통해 명시적으로 이행을 청구하십시오.
이행청구를 하지 않으면 그 기간 동안 발생한 지연손해금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라도 내용증명을 발송하여 이행청구의 시점을 서면으로 명확히 남겨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법원 2024다293313 판결은 다음을 명확히 합니다.
유언과 유증은 단순히 재산을 물려주는 행위가 아니라, 그 집행 과정에서도 복잡한 법률 문제가 발생합니다. 분쟁 없이 원활하게 유언을 집행하고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려면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기를 권고드립니다.
안국법률사무소 변호사 정희찬 010-2774-3211